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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6.25 전쟁 당시 군인들의 짐꾼, 이른바 전쟁터 노무자로 끌려갔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은 한 남성이 있습니다.
유복자인 그 딸은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숨진 사실을 인정받으려고, 올해로 벌써 10년째 정부와 싸우고 있는데요.
나라를 위해 나섰지만 나라가 외면하고 있는 참전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을 박조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정금임 / 6·25 전쟁 유복자 : 아버지가 맨날 하시는 이야기가 네 아버지는 군인이 데려갔어. 네 아버지는 군인이 데려갔어...]
때는 1951년 2월.
전북 고창 해룡리 평범한 농사꾼이자 가장이던 정문채 씨가 어느 날 갑자기 전쟁터로 끌려갔습니다.
공비토벌작전을 가던 군인들이 마을에서 가장 덩치 좋은 남성 3명을 뽑아 군대의 짐꾼, 이른바 전쟁터 노무자로 데려간 겁니다.
그리고 얼마 뒤 2명은 살아 돌아왔지만 문채 씨는, 공비들의 총에 맞아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정판병 / 전북 고창군 대산면 해룡리 주민 (당시 15세) : 한 분은 (총소리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자기는 무서워서 여기로 도망와 버렸고, 그분은 그 길로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
잔인하고 비극적인 전쟁이 유복자 정금임 씨를 낳았습니다.
[정금임 / 6 ?25 전쟁 유복자 : (그동안) 식모살이도 했고 노점 장사도 했고, 울기도 (많이 울었죠.) 그래서 채소 장사를 할 때도 정금임은 울보여 울보….]
정 씨가 아버지 정문채 씨의 명예를 되찾고 합당한 보상을 받기로 한 것은 지난 2006년.
하지만 노무자 신분이던 아버지에겐 그 흔한 군번 하나, 기록 한 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증거를 입증하는 것은 오롯이 혼자 남은 금임 씨의 몫이었습니다.
[정금임 / 6·25 전쟁 유복자 : 국방부는 100번도 더 가고 보훈청도 100번도 더 가고 고창도 100번도 더 갔지….]
답답한 시간만 보내던 지난 2012년 울보 금임 씨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직접 조사에 착수해, 직, 간접 목격자들의 진술을 확보하고 다른 각종 기록과 증거 등을 종합해, 정문채 씨의 전사를 인정한 겁니다.
그러나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육군 본부가 국방부의 조사결과를 뒤집은 겁니다.
이유는 규정 때문이었습니다.
육군 내규상 문채 씨 사망을 직접 본 증인 2명의 진술서가 필요한데, 1명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취재 결과, 국방부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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