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은 올해 초부터 나라의 독립을 꿈꾸며 목숨을 걸고 일제와 싸웠지만, 지금은 국가가 묘소 위치도 모르는 잊혀진 독립 유공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17살의 나이로 독립운동에 참가했던 김명수 씨도 그런 분 중 한 명이었는데요 김 씨의 흔적을 추적해봤습니다.
이승배 기자입니다.
[기자]
겨우 17살, 인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짧았습니다.
지독한 일본 헌병의 고문과 옥살이도 꾹꾹 참고 이겨냈지만,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해방된 조국은 한 달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김명수 지사. 나이는 어렸지만, 행동은 당찼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 형들 10명과 '청년 독립회'라는 조직을 만들고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펼쳤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당시의 모습은 더는 찾아보기가 힘들지만, 기차역처럼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 그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라고 적은 벽보를 이곳저곳에 붙이면서 일제와 맞서 싸웠습니다.
이런 공적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그는 숨진 지 50년이 지난 1995년에야 나라에서 훈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해지는 건 활자로 된 기록뿐, 어떤 모습인지조차 모릅니다.
김명수 지사의 흔적을 찾기 위해 졸업한 초등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지난 100년 세월의 기록을 모아 역사관을 따로 만들어놓긴 했지만, 여기 또한 그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최선희 / 창원초등학교 교감 : (이분이) 김광수 씨라고 지금 찾고 계시는 김명수 씨의 친형입니다. 자료도 있고 얼굴도 이렇게 나와 있고요. (그런데) 김명수 이분은 애석하게도 얼굴이 없습니다.]
고향인 창원에서 함께 항일운동을 한 동갑내기 친구도 만났습니다.
풋풋했던 10대는 이제 아흔한 살의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반세기 넘게 지났는데도, 친구 이름 석 자에 금세 눈이 촉촉해집니다.
[오경팔 / 김명수 지사 친구 : 경팔아 난 오늘 너희 집 오는 게 마지막이다. 왜 그러니까, (의사가) 밖에 못 나오게 하더라, (그리고) 이틀 만에 죽었어요. 내가 그날 부엌에 딱 들어서니까 울음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수소문 끝에 어렵게 김 지사의 조카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절을 함께 보낸 형제와 자매는 거의 돌아가셨고, 남은 가족은 태어나기도 전 일이라 얼굴 한 번 못 봤다고 말합니다.
[김주현 / 김명수 지사 큰 조카 : 명수 삼촌의 사진은 제가 본 적이 없습니...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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